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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미군 기지서 우리 한국어 교재 사용"

'젊은 할머니'로 보이는 모니카 류(한국명 전월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은 1947년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활력이 넘쳐 보인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류 이사장은 이미 2019년 은퇴한 종양 방사선과 전문의다. 2007년 이전에는 의사와 관련된 활동, 가톨릭 봉사에만 참여했다. 그러다가 칼럼니스트가 된 것이 계기가 돼 자연스럽게 사회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더 활력이 넘치게 됐다.     최근에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으로도 7년 째 활동하고 있으며 남가주 경기여고 동문회 회장 겸 이사장(2020-2022)을 역임했고 현재도 한국교육원 이사, 미주한인사연구위원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인생이라는 것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데, 일상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꼭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죠."   2007년 중앙일보에 대중을 위한 건강 칼럼을 위해서 글을 주기적으로 쓴 덕분에 숨겨져 있던 재능이 나타나 미주 가톨릭 문인협회, 재미수필가협회, 재외동포재단에서 문학상을 받으면서 칠순이 넘어 '문인'이 됐다. 2011년에는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에 선임됐다. 그러다가 3번의 거절 끝에 2017년 2년 임기의 재단 이사장이 됐다.     그는 "의대에 진학한 것도, 미국에 오게 된 것도, 종양 방사선 전문의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꼭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럼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이 생긴다. 원대한 계획도 없고 시간에 쫓겨 살며, 두 딸의 엄마, 바쁜 전문직 종사자는  대단한 성공이 어려운 것인가.   최근 한국어진흥재단은 아담한 자체 사옥을 마련했다.   명칭에 '한국어'라는 이름이 들어 있으니 한국 정부에서 운영 자금이라도 받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어 진흥 재단은 처음부터 한인 사회에 한국어,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시작한 순수 민간 비영리단체이기에 미국에서 매우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자체 사옥을 마련하는데 단 1센트도 한국 정부나 한국 기업, 심지어 한인 사회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다. 자체적인 사업 운영으로 자체 사옥을 마련한 첫 LA한인 단체가 됐다. 알려진 바로는 대한민국 정부가 없었던 일제 강점기에 이민 선조들이 힘을 모아 회관을 마련한 이후 첫 사례다.     자체 사옥 마련이라는 꿈의 실현에는 마침 사회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던 모니카 류 이사장의 경험과 실력이 주효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임 이사장의 속삭임에 속아서(?) 이사장이 됐는데 당면 과제가 있었습니다. 중고생 대상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훌륭한 한국어 교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국어를 쓰는 인구는 대략 8000만 명이 넘는다. 남북한만 해도 상당히 여러 종류의 교재가 있다. 그래서 미국 중고생용 한국어 교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가 어려운 얘기다. 미국 학교 정규 교재로 쓰기 위해서는 모국어로 쓰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혹은 2세가 다니는 주말 한국 학교에서 사용하는 수준이 아닌 비한국인이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엄격한 기준에 맞춰야 한다. 진짜 실력 있는 교육 전문가들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교과서 저술 위원회는 류 이사장의 진두 지휘 아래 시작됐다. 류 이사장이 역사 깊은 여학교인 말보로스쿨 재단 이사를 10년간 경험했던 것이 큰 밑거름이 됐다.     "투명하고 공정하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발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저자를 구하는 공고를 냈다. 미 전역을 대상으로 널리 알려 훌륭한 교재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참여할 교육 전문가를 찾았다. 6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지원한 30명에 대해 철저하게 심사했다. 이들을 15명으로 줄이고 또 절반으로 줄이고 최종적으로 3명으로 좁혔다. 혹시라도 '원칙'과 '실력' 대신 '인정'과 '인맥'으로 저자를 선정하지 않기 위해서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들 저자 3명은 원래 전혀 모르던 사이였는데 매주 토론하고 작업을 하면서 팀워크가 다져졌고 나중에는 서로 연락하는 친한 사이가 됐다.     엄격한 기준을 지키며 좋은 저자를 선정한 것은 물론 고액의 저자 원고료부터 제작 비용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등 일종의 벤처(모험사업)는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불러왔다. '에픽 코리안'은 미국에서 2번째로 큰 LA통합교육구를 비롯해 남가주, 북가주, 텍사스, 오리건, 오하이오 등의 7곳 교육구에서 한국어 과목 정식 교재로 채택됐다. 심지어 한국 오산 미군 기지 안에 있는 중고교에서도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에픽 코리안'의 판매 대금이 이번 자체 사옥 구입의 종자돈이 됐음은 물론이다.   류 이사장은 인생 전성기에 경험했던 다양한 봉사 활동 덕분에 인생 후반기에 비영리 단체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2018년 류 이사장은 대한민국 문제부로부터 한국어진흥재단을 대표해서 대통령상 포상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서울 경기여고 동문회에서 시상하는 '제31회 자랑스러운 경기인'상을 받았다. 전세계에 한국어를 널리 알린 업적이 인정 받은 것이다.     류 이사장에게는 평생 후원자이며 카이저 퍼머넨테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함께 은퇴한 남편 류지선 박사와의 사이에서 큰 딸 조앤(종양방사성과 전문의)씨와 작은 딸 진(UCLA연구교수)씨가 있다.  장병희 기자한국어 교재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최근 한국어진흥재단 한국어 진흥

2024-11-24

[문예 마당] 멋모르고 살았다

나는 멋모르고 엄마가 되었다. 뒤돌아보면 아찔하다. 멋모르면서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인 것 같다. 그래서, 새삼, 부끄럽기도 하고, 인생의 묘미함에 놀랍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진심이다. 누구에게 미안하냐고 물어 온다면, 많은 해당 인물이 있다. 전능하신 분에게도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감사하다.     따져보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그 자체가 뭣 모르고 생긴 일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이 내 의사를 묻지 않고 강제로 세상으로 데리고 나오셨으므로, 나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언니가 졸업한 중학교에 가라 해서 뭣 모르고 그리했다. 이어서 언니가 졸업한 대학, 같은 학과로 진학하라 하셨다. 그때에는 내가 좀 철이 들었기에 곰곰이 들여다보았더니, 내가 전공할 과목은 아니었다.     여자답고, 조신하고, 예쁘고, 숙녀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컸던 언니는 그에 적합한 가정학을 전공했다. 가정경제, 음식의 역사와 개발, 한국 의복의 개조, 여성과 소아의 예절 같은 한국 사회에 필수적인 분야들이긴 했으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말괄량이, ‘돌에 돌 치기’하듯 어른들에게 말대꾸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하여대는 버릇없는 아이, 게다가 반짝이는 좋은 인물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언니의 모교로 진학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되려는 사명감 같은 것은 없었다. 뭣 모르고 걷게 된 길이었다.     그리고 더 큰 일을 저질렀다. 한 남자한테 반해서 그 남정네랑 함께하는 삶을 택하고 그의 마누라가 되었고 함께 한국을 떠나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 우리는 용감했었던 것 같다. 이어서 뭣 모르고 아이들을 세상에 데리고 나왔다. 삶이 고달픈 것을 알기에, 미안하다.     그뿐이랴! 뭣 모르고 한국어진흥재단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또 뭣 모르고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까지 되었다.   내가 걸어 온 길은 잘 포장된 곧은 도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철없이 걸었기에, 길이 안전한지, 주위가 멋있고 아름다운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길도 많았을 터이다.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무릎이 까져 피가 나고, 부주의로 벌에 쏘이기도 했을 터인데, 기억나지 않는다. 잊기로 작심을 했었던 것인가.   그러나 나는 감사한다. 뒤돌아보면 나는 디아스포라 한국계 미국인으로, 양쪽 문화와 역사 속에서 숨 쉬어 왔다. 엄청난 모험을 반세기 전에 시도한 탓이다. 몇몇 곳에 임시로 정착할 때마다, 주위에는 한국분들, 비한국계 친지들이 함께해 주었다. 지금도 지속하는 문화의 섞임이 허용된 풍성한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 때부터 대다수 우리 조상들의 이주(移住)는 시작되었다. 그들은 러시아, 일본, 미국, 멕시코, 유럽 등 곳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어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든지 간에, 그분들은 반드시 두 가지 일을 했다. 그중 하나는 후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어렵지 않게 해결하고, 문제가 될 법한 일들을 문제로 삼지 않고 과제로 삼고 살아왔다. 그들은 정답을 찾기보다 해답을 알았고, 그 해답을 현명하게 실행하며 살았을 것 같다.   비록 멋모르고 철없이 시작했던 새로운 길에서, 겸손을 배웠다. 환자들을 돌보면서 성실함을 익혔다. 그들이 어깨에 지고 걸어왔던 인생의 짐 보따리는 내 것과 다를 바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것들을 내려놓도록 도왔다.     멋모르고 시작한 한국어진흥재단의 일 또한 나를 겸손하게 하였다. 선배들은 한국어진흥재단과 함께 그 특별하고 힘든 길을 쉼 없이 걸어왔다. 한글을 퍼트리고, 세계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물꼬를 트기도 했다. 우리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웠던 것처럼, 세계인들도 한글을 배우는 것에 촉진제가 되었고, 그런 일에 헌신했다. 하고 나는 드디어 떠나온 모국의 ‘간접적 애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멋모르고 시작하고, 멋모르고 살아온 나에게는 서로 꼬면서 한 몸체를 만드는 한국인의 두 유전자 실마리가 존재한다. 나의 아이들도 멋모르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꼬임을 잘 이루고 있는 유전자의 두 실마리가 그들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류모니카 / 수필가문예 마당 수필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한국분들 비한국계 우리 한국인들

2024-07-25

시의회·대학도 한글날 기념 나선다…내달 5일 LACC 세종동상 제막

오는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LA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열린다.   가장 먼저 10월 5일 오전 11시에는 LA시티칼리지(LACC) 캠퍼스 내 제퍼슨홀에서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이 열린다. 미국 공립대학교 캠퍼스 안에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되는 건 LACC가 처음이다. 〈본지 4월 12일자 A-1면〉   LACC는 이날 한국어반 수강생 등 재학생과 교직원에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LACC 한국어반은 1000명 이상이 수강하는 등 미국 내 한국어 교육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날 제막식에는 LA커뮤니티칼리지교육구(LACCD) 프랜시스코 로드리게즈 의장, LACC 아마누엘게브루 총장, 김영완 LA총영사,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자 이석 황세손과 앤드루 이 황실 후계자 및 관계자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대왕 동상은 지난해 4월 26일 이 황세손과 그의 양자이자 후계자로 지명된 임페리얼 패밀리컴퍼니 대표인 한인 2세 사업가 앤드루 이씨가 LACC에 전달한 기부금으로 제작됐다. 조선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이 황세손은 당시 LACC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어 프로그램 확대 및 동상 설치를 위해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LACC 한국어 프로그램 디렉터 미키 홍 교수는 “한국에서 손에 꼽는 세종대왕 동상이 미국 교육현장에 처음 세워진다”며 “앤드루 이씨와 이석 황세손이 기부한 10만 달러 지원기금은 LACC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1000명을 위한 장학금과 문화 행사에 쓰이고 있다. 세종대왕 동상이 건립되면 한국어 인기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LA시의회는 10월 6일 오전 10시 ‘10월 9일 한글날’ 제정 선포식을 진행한다.     한글날 제정 결의안을 추진한 존 이 시의원(12지구) 사무실 측에 따르면 LA시는 이날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선포하게 된다. 행사에는 김 총영사, 모니카 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본지 9월 19일자 A-3면〉   또 LA시는 이날부터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된다.   김 총영사는 21일 “LA시의회에서 한글날 결의안이 상정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글날 선포를 통해 한글과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이를 통해 한미간의 우호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시의회 선포식 다음 날인 7일 오후에는 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 모니카 류)이 LA한인타운 마당몰에서 타인종 및 영어권 2~3세들을 대상으로 영어 이름을 한글로 써주는 행사를 연다.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는 이 날 행사에는 붓글씨 전문가가 직접 나와 한글 이름을 써줄 예정이다.     모니카 류 이사장은 “타인종들에게 한글을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행사를 기획했다”며 “이날 타인종들이 붓글씨로 쓴 자신의 이름을 보면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느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장연화·김형재 기자세종동상 한글날 한글날 제정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조선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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